“나 때문에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말로 온갖 악담을 할 때에 너희는 행복하다.
하늘에서 큰 상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제42장. 산상 설교(山上 說敎)(1)
이제는 열두 제자들에게
당신의 교훈을 종합하여 알려줄 시기였다.
사도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이행할 사명을 쉽게 해명해주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까지 들을 수 있는 산 비탈로 이동하였다.
많은 무리가 다 넉넉하게 앉을 수 있는
평평한 곳에 이르자, 그분께서는 풀밭에 앉으셨다.
그러자 그분의 제자들과 무리들도 그분을 따라 앉았다.
제자들은 특별한 무엇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주님 곁으로 바싹 둘러 앉았다
무리들 중에도 전반적으로 기대감을 품고 있었으며
깊은 관심이 얼굴에 가득 나타나 있었다.
스승께서는 입을 열어 제자들과
무리들을 가르치셨다.
이 위대한 계시에서 그분께서는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보편적 진리를
간결하고도 조리있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인간이 지켜야할 최고 명심보감이었다.
인간으로서 알아야 할
하나님과 우주 창조와 생활의 규범이었다.
오늘과 내일의 모든 일이 내포되어 있었다.
여기에 아직까지 있어본 적이 없는
놀라운 약속이 선포되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福音)인 것이다.
그분께서는 먼저 사람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가를 가르치셨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법칙은 여덟 가지였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의 재난을
피할 수 있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고통과 손실, 슬픔 그리고 굴욕을 모면하리라는
보장을 하지 않으셨다.
열두 사도가 전 세계에 전할 교훈에는
이런 점을 언급한 계시는 하나도 없었다.
예수께서 주시려고 하는 것은 행복이었다.
행복이란 어떤 심한 손실에서도,
어떤 심각한 슬픔에서도 마음이
안정(安靜)된 상태이다.
어떤 격심한 고통에서도
마음의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열의와 정열로 임하는 태도이다.
여기에 어떤 재난 속에서도
사람의 마음에 안정과 힘을 주는
여덟 가지 법칙이 있다.
팔복(八福)이라고 알려진 이 여덟 가지 법칙은
간단하고도 알기 쉬운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
멸망으로 가는 길은 넓고 편하나 영광으로
인도하는 길은 곧고 좁다.
첫째로 사람은 마음이 가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온후하고 겸손하여야 한다.
거만하고 잘난 척하여서는 안 된다.
어떤 일에 큰 성공을 거두었더라도
거드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
좀 더 좋은 일을 생각해내어
그것을 위해 악전고투를 하여야 한다.
둘째로 사람은 온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부하고 비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우주적인 우애에 신뢰하며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태도인 것이다.
마음에 괴로움을 받을 때,
그것도 부당한 괴로움이라고
생각되는 경우에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애통하는 것이 셋째 복이다.
그러나 자기의 일로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남을 위하여 슬퍼하며 동정을 느껴
그를 도우려고 애쓰는 데 행복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스승의 교훈의 모든 점과
통하는 기본적인 교훈인 것이다.
또한 스승의 사명을 따라 실천하려는 자는
정의를 추구하기를 주리고 목마른 것 같이 하여야 한다.
다만 법률적으로 바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인생을 지배하는 모든 법칙은
하나님의 의지의 일부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준수하려는 의욕(意慾)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도 자비함을 받을 것이다.
자비함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마음이 순결한 자는 복이 있다.
예수께서는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적극적이고
철저한 순결을 의미한 것이다.
순결이란 사욕(邪慾)이 없다는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다.
순결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하며,
생활의 목적이 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또 정의를 위해서 예수님의 교훈을 위해서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
천국이 저희의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