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장. 산상 설교(山上 說敎)(4)
모든 사람은 자신의 행위와 말 그리고
생각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성품이 성실한 열두 제자들에게는 이 말이 놀라왔다.
각 사람의 언행심사가 영원한 기록으로 남아
최후의 결산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착한 일을 하고 지혜롭고 친절한 말과
좋은 생각을 한 사람은 집을
반석 위에 세운 사람과 같다.
폭풍이 불고 홍수가 닥쳐도 그 집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 교훈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마치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아서,
홍수가 “그 집에 몰아치면 크게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 교훈은 열두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중한 책임을 지워주었다.
그들이 이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예수께서 강조하셨다.
그분께서 그들을 택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땅의 소금이 되게 하려 함이다.
만약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에 쓰랴.
그들은 세상의 빛이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 앞에 빛을 비추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라.”
그들이 가르쳐야 할 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일이었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한 점이나
한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일생을 통하여 사람이 계획하는 바는
일시적인 것이 아닌 영원한 보물을 축척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은 모든 것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섬기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일편단심이어야 한다.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도덕적인 결정을 함에 있어서
속세의 긴급한 일로 그르치는 일이 있는데
이것은 근본적인 과오이다.
하나님께서는 공중의 새를 먹여 기르시고,
들의 꽃도 솔로몬의 지극한 영화로도
따를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입히신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과 딸인 사람을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리라는
확신을 가져야 할 것이 아닌가?
“아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예수께서는 여기까지 말씀하셨을 때
슬픈 듯이 외치셨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덤으로 주실 것이다”(마 6:33).
이 약속은 큰 위로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좀 더 중대한 약속으로
제자들을 격려하시고 위로하셨다.
의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자에게
더 놀라운 약속을 보장하셨다.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찾아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마 7:7).
“너희 중에 자기 아들이 빵을 달라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악한 사람이라도 자기 자녀에게는
좋은 선물을 줄 줄 아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거든 먼저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곧 율법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이다.”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가 둘러앉은 산비탈 바위 언덕에서
멀리 호수를 내려다보시며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설교를 하셨다.
태양은 수평선 저쪽으로 넘어가고
저녁노을이 짙어가는 하늘에 눈썹 같은
초승달이 떠올랐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셨다.
사람은 기도함 으로써
이러한 모든 생활을 능히 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좋을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미 알고 계시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시고,
아버지의 나라가 속히 오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에게 날마다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들을
용서해 준 것처럼 우리 죄를 용서해 주소서.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악에서 구해 주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아멘)”(마 6:9~13).
이것이 “산상설교(Sermon on the Mount)”이다.
이 원칙들은 주의 백성들의 마음 속에 길이 간직할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하라. 그분의 말씀 위에 굳게 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