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생애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

팽나무 2019. 6. 12. 16:04



 

    제36장. 지붕을 뚫은 병자(2)

     

     

    절망이 환자의 심령에서 떠나가고

    용서의 평강이 그의 마음에 임하였다.

    육체적 고통이 사라지고 온몸은 변화된다.  

     

    그는 단순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새 생명의 은혜로 받아들였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행복한 침묵 속에 누워있었다.

    이 말을 듣던 사람들 중에서

    심상치 않은 수군거림이 들렸다.

     

    성전에서 온 랍비들은 구주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자 입이 딱 벌어졌다.

    얼마전에 이 환자는 그들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소망과 동정을 거절하였던 것이다.

     

    더구나 그에게 “너는 너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선언했었던 것이었다.

     

    이제 그들의 영향력은 상실될 것이라는

    두려운 공포에 사로잡혔다.

    예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네 죄는 용서받았다.”고 선언하셨다.

     

    이것이야말로 예루살렘에 보고할

    중요한 자료가 된 셈이다.

     

    “신성모독이다.”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군데 감히 하나님을 모독하는가?

    하나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사형에 해당되는 무서운 명령이 방의 벽을 울렸건만

    아무도 그 말에 대항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예수께서는 그저 환자 위에 허리를 구부리시고 계셨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

     

    성전에서 온 사람을 향하여 예수께서 물으셨다.

    “무엇이 나쁘다고 생각하느냐?

    ‘네 죄는 용서받았다.’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더 쉽겠느냐?”

     

    예수께서는 몸을 꼼작 못하면서

    그저 고통만을 느끼었던

    그 사람의 뺨을 어루만지셨다.

    조용하나 힘 있는 어조로 말씀하셨다.

     

    “인자(人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특권이 내게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네 침구를 걷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이 순간 모든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그때 몸을 움직이지 못하던 병자가

    모든 사람앞에서 움직였다.

    말도 못하던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가 처음 발한 소리는 병이 나아

    감격한 나머지 흐느끼며 부르짖는 소리였다.

     

    그것이 병에 시달려 피폐한

    그의 몸 전체를 뒤흔드는 환희의 오열로 변했다.

    한 쪽 팔꿈치로 몸을 일으키며

    그는 소리를 질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천정 구멍에서 흥분한 다섯 사람의 얼굴이

    감격에 넘쳐 소리를 질렀다.

    그것을 들으며 환자는 방바닥의 병상을

    두 손으로 짚으며 일어나려고 애썼다.

     

    그는 휘청거리는 다리로 일어섰다.

    그는 울면서 허리를 굽혀

    명한대로 병상을 쳐들어 메었다.

    그는 새로 얻은 체력에 감격하여

    그 집에서 걸어나갔다.

     

    예수께서는 미소를 띠시며 지붕에 있는

    그의 가족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였다.

     

    그들은 병이 나은 사람을 따라 뛰어갔다.

    인자! 다니엘의 예언의 성취(成就)?

    죄를 사하는 권능? 이것은 이단이다.

     

    이 일이야말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보고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바리새파 사람들과 첫 충돌이 일어났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해서

    그렇게 맹렬한 공격을 가하신 일은 없었다.

     

    그 후 몇 세기를 내려오며 예수님의 타협할 줄

    모르는 태도에 대하여 불만을 표시한 것은

    바로 그들 학자들과 교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변명을 하여도

    예수께서 그들에게 가하신

    규탄의 화살을 완화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죽었고 병들어 있으면서도

    군중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권력을 휘두르려는 지도자들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그릇됨을

    꾸짖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침묵을 지키신다면

    그들의 형식만에 치중하는 교훈을

    시인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모세의 율법이란

    자질구레하고 복잡한 규례(規例)를 준수하는 것이었다.

     

    겸손이란 그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겸손한 태도로

    그리고 은밀한 중에서

    하나님께 접근하려는 노력이 없었다.

     

    착한 일을 할 때에는

    사람들 앞에 자랑 삼아 보이는 것이었다.

     

    그들이 하는 일만이

    착한 일이라는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은 인생의 교실에 있어서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생도들이라고 자부하였다.

    그들은 교만한 학자들이었다.

     

    예수께서 그들에 대하여 지적하신 대로

    “눈먼 자들을 인도하는 눈먼 지도자”

    (마 15:14, 신킹제임스역)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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