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생애

예수께서 시험받으심(1)

팽나무 2018. 10. 4. 20:02


 




    제23장. 예수께서 시험받으심(1)

     

     

    “예수께서 성령이 충만하여 요단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셨다.

     

    마가의 말은 좀 더 의미심장하다.

    “그러고 나서 즉시

    성령님은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님이 거기서 40일 동안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며 들짐승과 함께 지내”셨다.

    “그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서

    그 기간이 끝났을 때는 몹시 시장하셨다.”

     

    그분께서는 산 중턱의 굴을 찾아 

    거처할 곳을 마련하셨다.

    그분께서 여기에 은신하신 것은

    인간이 받는 고뇌와 유혹을 체험하려 함이었다.

     

    당신께서 홀로 계시면서 자신의 사명과

    사업을 숙고하시고자 하셨다.

    금식과 기도로 당신이 걸으셔야할

    피묻은 길을 위하여 자신을 무장하시고자 하셨다.

     

    그러한 체험을 얻으신 후에 요한이

    자기에 대하여 말한 사업을 착수하려는 것이었다.

    남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자신이(하나님이 아닌 사람으로서)

    유혹을 이겨야 하셨다.

     

    이를 위하여 예수께서는 이 물도 없는

    황량한 땅으로 들어 오셨다.

    이곳을 후세에 ‘시험산(試驗山)’,

    ‘사십일 산(四十日 山, 330 미터)’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마치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다가

    미완성으로 버려둔 것 같은 산이었다.

    이 곳에 사는 자들은 미친 자가 아니면

    엣세네파(Essenes派) 사람 이었다.

     

    괴상한 금욕생활을 따르는

    물욕을 초월한 그런 사람들뿐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높고 낮은 돌과 바위뿐이었다.

    독수리 따위의 사나운 새 이외에는

    새도 깃들이지 않는 돌투성이의 골짜기와

    울뚝불뚝한 언덕의 연속이었다.

     

    짐승도 표범이나 산돼지나 살 수 있는

    음산한 곳이었다.

    유다 사막에서도 가장 황량한 곳 중의

    한 곳이었다.

     

    인적이 전혀 없는,

    경치다운 경치는 전혀 없는 땅이었다.

     

    예수께서 여기에서 단식(斷食)과 고요한 중에

    명상(瞑想)을 하는 엄격한 수련을 시작하셨다.

    40일 동안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지내셨다.

     

    예수께서 40일 밤낮을 단식한 끝에

    몸이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때였다.

    피로와 고독을 뼈저리게 느끼셨다.

    지칠 대로 지쳐 쓰러질 지경에 이르셨다.

     

    그때 비로소

    유혹의 괴로움을 절실히 느끼게 되셨다.

    그분은 사탄과 대면하여 산 위에 섰다.

     

    그분의 주위에는

    세계의 파노라마가 전개된 듯하였다.

    가까이에는 누르스레한 바위들이

    저주받은 계곡의

    사정없는 폭염(暴炎)으로 타고 있었다.

     

    돌멩이들은 열을 반사하며 이글이글 타오르는

    대기는 악취와 독기로 질식할 것 같았다.

    이때 인간 예수의 마음에

    기만(欺瞞)과 추종(追從)과 아첨(阿諂)이

    접근하였다.

     

    그것은 에덴동산 이래

    언제나 인류를 괴롭혀 오던 유혹이었다.

     

    더군다나 성경구절을 인용하며 덮치는 것이었다.

    악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다룬다.

    예수님에게도 그 수법(手法)을 쓰려고 하였다.

     

    괴롭고 곤궁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런 중대한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왜 자신을 생각하지 않느냐?

    하나님의 아들이 무엇 때문에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해야 하는가?

     

    말 한 마디면 잔치도 차려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을 것이 아닌가?

     

    왜 고독하고 미천한 목수로서

    네거리에서 설교나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분께서는 사십일 간의

    금식과 기도로 연약하고 쇠약해지셨다.

    정신적 고민으로 피로하고 수척해지셨다.

    사탄은 이때가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지금 그리스도를

    정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접근하였다.

    구주께서 굶주림으로

    기진맥진한 중에 음식을 갈망하셨다.

     

    바로 그때에 사탄이 갑자기 나타났다.

    광야에 널려있는 떡덩이 모양의 돌들을

    가리키면서 유혹자는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을 빵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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