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생애

사천 명을 먹이심

팽나무 2020. 2. 7. 07:21


 

 

    제53장. 사천 명을 먹이심

     

     

    그 후 예수께서는 오천 명에게 음식을 먹여준 사실을 의심하며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셨다.

     

    서기 30년 초여름(6월말이나 7월초)

    다시 한 번 이적(異蹟)을 행하셨다.

    이번에는 이방인들로 사천 명의

    어른 남자가 굶주리고 있던 때였다.

     

    그들은 3일 동안 계속 구주 곁에 모여

    종일토록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었다.

    밤에는 야외에서 자면서

    그분의 하시는 일을 보고자 열망하였다.

     

    3일이 다하였을 때 그들의 양식은 떨어졌다.

    이때에도 그분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식물을 가지고 이용하였다.

     

    곤란을 당하였을 때 표적(表迹: 요한복음에 쓰는 용어)을 바라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점은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떡 일곱 덩어리와

    몇 마리의 생선으로 그 많은 무리들을 배불리 먹였다.

     

    성전에서 파견된 정탐꾼들은

    그분께서 시돈으로 여행하셨을 때에도

    뒤를 따라다니며 모든 것을 보고 들었다.

     

    이번에는 그들도 이적의 떡과 생선을 같이 먹었다.

    웬만큼 지각이 있는 자들이었다면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선생님에게 승복할 것이었으나 그렇지 못하였다.

     

    그들 중에 신경질적인 사나이가 있었는데

    예수님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하늘로써 나타나는 이적을 보여 달라며 뱃심 좋게 빈정대었다.

     

    예수님의 손에는 방금 전에 나누어준 떡 부스러기가

    묻어있는 데도 말이었다.

     

    이때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나와서 하늘로부터 온 표적을 요구하였다.

     

    여호수아(Joshua)의 시대에 이스라엘이 벧호론에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려고 나갔다.

     

    그때에 지휘관의 명령대로 승리를 거둘 때까지 태양은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여호수아 10장).

     

    이와 비슷한 많은 이적들이 그들의 역사에 나타났다.

    그들은 이와 같은 표적을 예수님께 요구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이런 표적이 아니었다.

    단순한 외적 증거는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될 수 없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적 계몽이 아니요 영적 혁신이었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사 복음서에 35개가 기록됨)

    그분의 신성에 대한 표적이었다.

     

    그분은 메시야에 관하여 예언된 바로 그 사업을 행하고 계셨다.

    그러나 이 자비의 사업이

    바리새인들에게는 심한 모욕이 되었다.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인간의 고통을

    냉담한 무관심으로 바라보았다.

     

    많은 경우에 그들의 이기심과 압박이 고통을 야기시켰으나,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고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적이 그들에게는 질책이 되었다.

    유대인들로 구주의 사업을 거절하도록 이끈 것은 그분의

    거룩한 품성을 보이셨기 때문이었다.

     

    그분께서 행하신 이적의 가장 큰 목적은

    인류의 축복을 위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분께서 하나님에게서 오셨다는 가장 큰 증거는

    그분의 생애가 하나님의 품성을 드러내신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사업을 행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하셨다.

    그와 같은 생애는 모든 이적 중에서도 가장 큰 이적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정탐꾼이나

    그 일당에게 표적을 보여줄 수 없다고 잘라 말씀하셨다.

     

    자기가 메시아라는 증거를 보여 줄

    이적을 행하지 못하겠다고 거절하셨다. 

    그들은 이것을 보면서 그분은 메시아이기는커녕

    악마임에 틀림없다고 판단하였다.

     

    오늘날 진리의 기별이 제시될 때에

    유대인들처럼 우리에게 표적을 보이라,

    이적을 행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요구대로

    이적을 행하지 않으셨다.

    광야에서도 사탄의 시험에 응하실 적에

    이적을 행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우리 자신을 옹호하거나

    불신과 교만의 요구를 채워주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주지 않으신다.

     

    그러나 완고하고 억센 의지의 지배를 받던 자가

    해방을 얻고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의 이끄심에

    전적으로 복종할 때 기적이 이루어진다.

     

    강력한 미혹을 당하였던 사람이

    도덕적 진리를 깨닫게 되는 때에도 그러하다.

     

    인간의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

    곧 인간의 품성의 변화는

    항상 살아 계신 구주께서 영혼을 구하려고

    역사하고 계심을 보여 주는 가장 확실한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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