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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마리아인(2)

팽나무 2020. 7. 2. 08:49



제63장. 선한 사마리아인(2)

 

이것은 극히 간단해 보이는 질문과 응답 같았다.

그러나 지적으로 간교한 학자에게는

깊은 기술적인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율법학자가 제기한 것은 법리적 문제였다.

게다가 위험한 함정이 숨겨진 질문이었다.

 

그가 노린 것은 금제조항(禁制條項)들이

다 같이 평등한 가치와 중요성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이것은 예수님을 올가미에 걸어 당국과의

마찰을 일으키려는 간교한 질문이었다.

그분께서 조금도 망설임 없이 답변하셨다.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인간의 의무를

간단명료하게 말씀하셨다.

모세의 책인 신명기와 레위기에서

인용한 말로 율법의 근본정신을 설명하셨다.

 

이렇게 밝힘으로써 그분은 기본적인 율법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민중을 괴롭히는

일거리로 삼는 인위적인 계율과의 구분을

명확하게 선을 그어준 것이다.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은

이 두 계명에서 나온 것이다”(마 22:40).

예수께서는 질문자에게 단언하셨다.

 

그러나 질문자는 주저하지 않았다.

율법학자는 수그러지지 않고 말을 이었다.

“선생님, 옳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 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말씀이 맞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짐승을 불에 태워 바치는 모든 제물과

그 밖의 여러 제물보다 낫습니다.”

 

예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상대편의 표정을 눈 여겨 보셨다.

“네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멀지 않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네 말이 옳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그 말에 율법학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누가 내 이웃입니까?”

그는 날카롭게 추궁하였다.

 

예수님을 딜레마에 빠뜨리려고

미리 생각했다가 한 말이었다.

이웃이란 같은 동포인 유대인을 말함인가?

설마 이방인들을 이웃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지?

더욱이 저 타락하여 경멸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아니겠지?

 

말하기에도 더러운 사마리아 사람들은

더욱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선생님, 누가 내 이웃입니까?”

 

예수께서 앉으신 자리에서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앉은 사이로 열린 현관문이 보였다.

문 밖에는 도적들이 출몰하는 큰길이 보였다.

 

그분의 이야기는 그 길에서 상연되는

연극의 줄거리를 말하는 듯하였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이런 이야기는 청중들이 사실과 같이

느끼는 일이었기 때문에 소름이 끼쳤다.

 

이야기의 매력이

그들을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갔다.

그들은 여행할 행장을 꾸린

“어떤 사람”의 모습을 그렸다.

 

그의 아내가 불안한 빛을 띠고 거들면서

좋은 길동무가 있을 때까지 출발을

연기하는 것이 어떠냐고 권한다.

아니 그럴 순 없어.

급한 용무가 있으니까.

내일 아침 밝기까지 여리고에

도착하지 않으면 안 돼.

그 때 열 살 먹은 아들의

앳된 목소리가 들린다.

 

그 애의 말에 의하면 그 밤에

같은 길을 갈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애의 친구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 영원한 사랑, 위대한 사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