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가랴도 따라 일어섰다.
그녀가 왔다 갔다 하며 울지 못하도록
아내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말을 못할망정 귀는 먹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의 푸념을 모조리 다 듣고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다시 글을 썼다. ‘나는 이 집의 주인이다.
나를 미쳤다고 해도 좋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을
우선 다 들어야 할 것이 아닌가?
천사가 무어라고 말했는지? 울음을 그치지 못해!
당신, 듣지 않을 테야?’
그 순간 집안이 떠들썩하였다.
글을 써내려 가는 사가랴 외에는
모두가 일시에 입을 벌렸다.
안나는 엘리자벳을 달랬다.
요아킴은 방안 한복판에 일어서서 제 생각을 말하였다.
“도대체 천사가 사람에게 말한 것을 믿었다고 해서
무엇이 나쁘단 말이요. 왜 그것이 미쳤단 말이오?”
요아킴은 그들을 꾸짖었다.
“당신들은 모세오경을 부정할 셈이요?
그리고 안나와 엘리자벳, 당신들은 우리 가문은
특별하다는 것을 잊었소? 먼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꿈에 지시를 받은 일이 흔히 있었소.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 왔던 것이요.
엘리자벳 당신은 이 사가랴가 미쳤다고 생각되시오?
모두 진정하고 성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봅시다!”
사가랴는 고개를 숙여 요아킴이 그렇게 엄숙하고
위엄 있는 태도를 보여준 데 대하여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그는 피로에 못 이겨 의자에 주저앉았다.
노인에게 이 하루는 아무리 튼튼한 체력이라도
견딜 수 없는 날이었다. 그는 써놓은 글을 다시 가리켰다.
“나는 천사의 말을 들었다!”
모두 엄숙하게 머리를 끄덕거렸다.
제사장은 붓을 들어 다시 쓰기 시작하였다.
“나는 성소에 들어갔었다. 그때 어떤 사람이
“향단 오른쪽에” 서 있었다.
그는 날개를 접고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어찌 놀랐는지 향로(香爐)를 떨어뜨릴 뻔하였다.
정신이 아찔하여지고 사지가 식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무릎이……”
“그럼요, 여보,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그래 천사가 당신한테 무어라고 합디까?”
엘리자벳이 성급히 물었다.
사가랴가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천사가 뭐라고 했는지 써보세요.”
사가랴는 양피지에 몸을 구부리고 열심히 써 내려갔다.
“천사는 내가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그런 굵은 목소리로
‘사가랴야, 두려워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네 기도를 들으셨다!’”(눅 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