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 이야기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

팽나무 2017. 10. 6. 14:19


흥왕초등학교 담임 선생님 


   1961년 3월 만 7살(호적으로 6살) 나이에 흥왕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당시에는 누구나 똑같이 수건을 가슴에 옷핀으로 매어 달고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입학식에 참여하였다.

  1학년 담임은 중년의 남자, 오oo 선생님이셨다.

일 개 학년이 3개 반으로 학급당 정원 60명씩 교실 가득 학생들이 들어 있었다.


현재와는 달리 당시에는 모든 학생이 문자 해득을 못한 채

학교에 입학하여 한글을 해득하는 것이 1학년 시작의 공부였다.


2학년 때에는 김oo 선생님이 담임이셨다.

동네 뒷강(부곡천)에서 수영한다는 고자질인 듯,

날마다 의자와 책상을 들고 수업 중에 기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수영을 할 때가 아닌데도 무엇이라 말도 못하고 기합을 받았다.

덕분에 오늘의 건강한 몸이 되었지 않았나 싶어 감사 드린다.

선생님은 무슨 일이 바쁘신지 많은 시간을 책상에서

사무나 책을 보시고 우리들은 자습하는 시간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11월 무렵에 겨울 땔감으로 솔방울을 따오던 때였다.

어린 학생들이 인근 강씨 종종산에서 따온 솔방울을 학교 창고에 모아 넣던 중,

양동이 수가 착오가 생겨서 학교 소사를 혼내시던 선생님으로 무서운 모습으로만 남아 있다.

3학년 때에는 이oo 선생님이셨다.

같은 경주 이씨이시며, 초등학교 6년에 걸쳐 처음이고 마지막인 여자 담임이셨다.

음악 시간이면 오르간을 치시며 노래를 가르쳐 주시어 즐거웠던 시간을 보냈다.

3학년 11월경에는 월말고사에서 성적이 우수하여 운동장 조회 시간에

대표로 상을 자랑스럽게 받았고, 부모님께도 칭찬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4, 5학년 때에는 황oo 선생님이 담임이셨다.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으로 수업 중에 장난은 물론

눈동자도 돌리지 못할 정도로 주의를 집중하여 공부를 하였다.

덕분에 공부를 잘 할 수 있어 월말고사 때마다 항상 3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4 학년말에 성적 우수자에게 주는 우등상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상장을 나누어 주고 나자, 학급 반장이던 김oo이 손을 들고,
“선생님! 성적이 우수한 이oo이 우등상을 받지 못하고,

여학생들이 우등상을 많이 받았는데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해 어색한 종업식이 되고 말았다.

사실 나는 방학 동안 내내 놀기만 하였고,

우등상을 판별하는 방학생활 학습지를 소홀히 하여

우등상을 판별하는 마지막 시험을 잘못 보지 않았나 생각된다.

4, 5학년은 학급 편성을 별도로 하지 않고 계속 이어서 올라갔고, 담임도 같았다.


6학년 때에는 이oo 선생님이 담임을 하셨다.

3개 반에서 1개 반은 중학교에 가지 않을 학생으로 편성하고,

2개 반은 중학교에 진학할 학생들로 편성하여 진학을 위주로 지도하였다.

당시의 입시 제도는 성적에 따라 전국의 어느 학교라도 선택하여

진학하는 시절이라 2개 반은 밤 12시까지 공부를 하였고,

입시 과목은 100문항의 시험지를 받아서 시험을 여러 차례를 치루었다.





'나의 고향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억- 흥왕국민학교 소풍  (0) 2018.02.21
대천교회 학생회원 재회  (0) 2017.10.19
내가 살던 옛집들  (0) 2017.10.17
돈다산   (0) 2017.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