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이야기

용인시 충렬서원, 정몽주 묘소를 다녀와서

팽나무 2017. 9. 30. 22:52

 


외삼문에 걸린 충렬서원


                 용인시 충렬서원, 정몽주 묘소를 다녀와서

 

 

      용인시에 자리한 충렬서원과 정몽주의 묘소를 찾았다.

      생거진천, 서거용인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살아서는 진천, 죽어서는 용인이 좋은 곳이란다.


    용인은 해발고도가 높아 홍수나 폭우의 피해가 적고,

    자연환경이 수려하고 한양이 가까와 묘자리로 적격이다.


    고려말 유학자이자 충신인 포은 정몽주(1337-1392)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서원이 세워졌다.




    선조대인 1576년 정몽주와 조광조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서원이 창건되었다.

    구한말에 철폐되었다가 1924년에 복원되었다.


    건물은 강당과 사당, 내삼문과 외삼문이 있다.

    부속 시설이 없이 사당과 강당만으로 구성 되었다.





                             강당의 모습



                                 사당의 모습



                               사당 내부의 모습




    충렬서원 인근, 국도변으로 정몽주 묘역이 있다.

    포은 정몽주의 시신을 개성에서 고향으로 운반하던 중,

    용인을 지날 때 명정이 묘역으로 날아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방원의 하여가에 응답한 단심가 비석과

    정몽주가 지은 백로가 비석이

    포은의 충절과 기상을 말없이 전해준다.





    그러한 학덕과 충절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본이 되어

    전국 각지에 정몽주를 기리는 서원이 세워지게 되었다.





    포은 정몽주는 태종 이방원에게 피살되나,

    1406년 태종 때 복권되었고,

    1571년 중종 때 충렬서원이 세워졌다.